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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아쉬운 듯 후련한 듯 펑펑 울었다

500m 레이스를 마친 뒤 그는 펑펑 울었다. 결과는 2위. 슬픔이었을까. 아쉬움이었을까.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후련함 오랜 부담감을 떨쳐냈다는 홀가분한 감정이 북받쳐서 나온 눈물이 아니었을까. '빙속 여제' 이상화(29.스포츠토토)의 마지막 질주가 끝났다. 맞수 고다이라 나오(32.일본)에 뒤져 은메달을 땄지만 멋진 레이스였다. 올림픽 개막 전 인터뷰에서 이상화는 "금메달을 따든 못 따든 눈물을 흘릴 것 같다. 팬들도 같이 울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스를 마친 이상화는 그의 말대로 울었다.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도 했다. 네 번의 올림픽 네 번의 눈물=이상화의 첫 번째 올림픽은 2006년 토리노 대회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상화는 5위에 오른 뒤 눈물을 흘렸다. 아쉬움의 눈물이었다. 4년 뒤 밴쿠버올림픽에서도 이상화는 울었다. 이번엔 기쁨의 눈물이었다. 세계기록 보유자 예니 볼프(독일)를 꺾고 금메달을 따낸 뒤였다. 이상화는 이승훈.모태범과 함께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 참석해 유치전을 도왔다. 그러고는 2014년 소치올림픽만 바라보며 내달렸다. 이상화는 결국 소치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에도 그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한 이상화는 평창올림픽에도 출전하기로 결심했다. 이상화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다면 운동을 그만뒀을 것이다. 이룰 수 있는 걸 다 이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꼭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상화는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엔 출전하지 않을 계획이다. 제갈성렬 해설위원은 "기량으로는 충분히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화는 네 차례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했다. 이상화는 "친구 (이)승훈이와 (모)태범이 그리고 쇼트트랙 대표팀 후배 (곽)윤기는 베이징올림픽에도 도전하겠다고 하더라. 나는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부상 이겨낸 야생화=이상화는 그동안 무릎과 종아리.장딴지 등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그를 가장 오래 괴롭힌 부위는 무릎이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도 왼 무릎 연골과 연골판이 손상된 채 금메달을 따냈다.활액이 들어 있는 활막 일부가 두꺼워지는 '추벽증후군'도 있다. 밴쿠버올림픽 이후 수술도 고민했지만 후유증을 고려해 재활치료 및 강화훈련으로 버텼다. 하지정맥류도 있다. 이상화는 "너무 아파서 소치올림픽 전엔 잠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지난해 3월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은 뒤 상태가 좋아져 평창올림픽에선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김효경 기자

2018-02-18

'영원한 빙상의 여왕' 값진 은메달

전날 최민정 1500m 금메달 "기어변속한 듯 막판 질주" '빙속여제' 이상화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에서 3연패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은메달을 획득,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역대 3번째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는 18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 레이스에서 37초33의 기록으로 고다이라 나오(일본)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로써 이상화는 아쉽게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년·1992년·1994년)에 이어 역대 올림픽 두 번째 500 3연패 달성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3차례 올림픽 여자 500에서 '금·금·은'이라는 값진 성과를 이뤘다.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동계올림픽 단일 세부종목에서 3개의 메달을 거머쥔 것도 이상화가 처음이다. 막판 스퍼트가 아쉬웠다. 이상화가 코너를 돈 후 속도가 떨어지고 결국 고다이라보다 늦게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관중석은 안타까운 탄식으로 가득 찼다. 레이스를 마친 뒤 트랙을 돌면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던 이상화는 결국 감정이 북받친 듯 허리를 숙여 눈물을 쏟아냈다. 부상과 수술, 재활을 거듭하며 은메달을 따낸 이상화 선수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축전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상화 선수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지만, 우리 국민들에겐 이상화 선수가 최고"라며 "영원한 빙상의 여왕"이라고 말했다. 이상화가 아쉽게 금메달 사냥에 실패했지만, 전날 최민정은 쇼트트랙 1500m 여자 결승에서 2분24초948로 한국의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최민정에게 1500m 우승은 남다르다. 지난 13일 열린 500m 결승에서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 판정을 받았다. 절치부심했던 최민정은 이날 2위 리진위(2분25초703)와 거의 1초에 가까운 격차를 벌인 압도적인 레이스로 외신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UPI 통신은 "마지막 두 바퀴에서 '기어 변속'을 한 것 같았다. 4위에서 1위로 올라선 뒤 차이를 벌렸고, 결승선을 통과할 때 최민정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최민정은 20일(LA시간 20일 새벽 3시29분)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2관왕을 노린다. 대한민국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다. 우리나라는 이 종목이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2014년 소치 대회까지 7번의 대회 중 5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주말 이틀간 메달 3개를 추가하면서 19일 오전 현재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며 종합 9위를 기록중이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를 획득해 종합 순위 4위에 오르겠다는 이른바 '8-4-8-4'를 목표로 내걸었다. 18일부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목표를 향해 막판 질주를 하고 있다. 후반기에도 메달을 노릴 종목은 빙상 쪽에 몰렸다. 한국은 남자 500·5000 계주(이상 22일), 여자 3000 계주(20일)와 여자 1000 등 남은 쇼트트랙 4개 종목에서 3개 이상의 금메달을 기대한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2018-02-18

동계올림픽, 한국 빙속 겹경사…모태범 이어 이상화까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겹경사를 맞았다. 15일 모태범(21.한국체대)이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74년 묵은 ‘금메달 한’을 푼 데 이어 16일 이상화(21.한국체대)까지 여자 5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동계올림픽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했다. 게다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아시아 여자 선수로는 첫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는 자부심을 함께 얻었다. 1964년 인스부르크 대회 여자 3,000m에서 북한의 한필화가 아시아 여자선수 중 처음으로 은메달을 목에 건 뒤로 일본과 중국 선수들이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낸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금메달은 이상화가 처음이다. 쇼트트랙에 앞서 한국 동계스포츠를 이끈 종목이지만,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은 늘 한 걸음 뒤에서 남자 선수들을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일본 식민지였던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김정연도 남자 선수였고,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건 김윤만도 남자 스프린터였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은 1960년 미국 스쿼밸리에서 열린 제8회 대회 때 김경희와 한혜자가 출전하면서 처음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당시 김경희와 한혜자는 500m와 1,000m, 1,500m, 3,000m에 출전했지만 모두 20위권 바깥에 머물렀다. 20년 넘게 20위권에 진입하는 것도 힘겨웠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은 유선희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메달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1988년 캘거리 대회에서 500m 13위에 오른 유선희는 4년 뒤 알베르빌에서는 500m 9위에 올라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했다. 유선희는 2년 뒤 릴레함메르 대회 500m에서는 39초92의 기록으로 5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그러나 유선희가 은퇴하면서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은 다시 20위권 진입도 버거운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12년이 지난 뒤에야 유선희의 뒤를 이을 간판 여자 스프린터가 탄생했다. 2006년 토리노 대회 당시 앳된 여고생이었던 이상화는 1, 2차 레이스 합계 77초04로 500m 5위에 오르면서 유선희의 사상 최고 성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3위와 고작 0.17초 차이밖에 나지 않는 좋은 기록이었다. 아쉬움과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첫 동계올림픽을 마친 이상화는 더욱 원숙해진 기량으로 두 번째 올림픽에 나섰고, 결국 76초09의 기록으로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의 ‘금빛 질주’ 덕에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역시 아시아 최강으로 우뚝 서면서 늘 뒷자리에 밀려 있던 아쉬움을 털었다.

201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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